이걸 이 나이때 샀다고?-만화로 보는 주역, 이기동, 최영진

그렇다. 난 어렸을 때부터 꽤나 자의식이 강하고 자기 생각에 빠져 사는 아이였다. 좋은 말로 하자면 자존감과 자신감이 엄청나게 강했고, 나쁜말로 하자면 중2병이 너무 일찍 와서 너무 늦게 빠져나갔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그런 표시를 전혀 내지 않았지만, 혼자 있을때는 "내 안의 암흑룡이 깨어나려고 한다!" 와 같은 생각을 서슴지 않고 하는 아이였다. 밖으로 표출을 하지 않으니 크게 문제될 건 없었는데, 문제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났어도 망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변모해갔다. 이게 글을 쓸때는 장점이 되는데, 일상생활에서는 자꾸 잡생각 때문에 다른 일에 집중이 잘 안된다는 단점으로 변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손님을 기다려야 하는 일인데, 손님이 없을 때 잡생각을 시작해서 손님이 와도 끝내질 못해 몇번 부르게 하는 일이 생길 때도 있다.

이런 강한 자의식은 책을 고를때도 꽤 많이 작용했는데, 지금이야 나이도 있고 해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서 고르곤 하지만 어렸을때는 그야말로 '나님께서 책을 고르는데 이딴 하찮은 책을 고를순 없지!'라는 느낌으로 책을 골랐다. 한마디로 제대로 읽지도 못할 책을 골라서 쌓아두곤 했다는 거다.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서 골랐던 책이다.


(이 책도 이해도 못하면서 들여다보느라 엄청나게 삭았다.)

무려 주역이다! 만화로 본다고는 해도 주역이라니. 공자도 책 묶은 끈이 세 번 떨어질때까지 읽었다고 한 책이다. 이 책을 언제 샀는지 궁금해서 들여다봤는데, 무려 중1 시절 반번호가 써 있었다. 나는 대체 이걸 무슨 생각으로 산걸까.

그래도 나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긴 하다. 만화라 술술 넘기기도 좋고 서법-점치는 법-도 잘 설명돼 있어서 나름 열심히 들여다보며 점도 쳐보곤 했다. 이후에 이런 쪽에 눈을 떠서 타로카드나 관상, 손금 같은 걸 자세하게 공부하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나도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았다면 아예 그 쪽으로 직업을 가지거나, 완전히 파고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요새 다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주역이란 책은 점복서라기보다는 철학서라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봐서는 미래를 점치는 내용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게는 자기수양의 길을 안내해주고 크게는 중국 철학의 개념을 성립하고 있다. 괘와 효(일명 점괘)를 해석하며 자기성찰을 하고,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 책은 주역 자체를 자세하게 해석하지는 않는다. 사실 주역을 설명하려면 아마 백과사전쯤 두께의 책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딱 입문서로의 역할은 제대로 하고 있다. 주역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해 자세하고 흥미롭게 설명해서 자세한 내용은 스스로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에 나온 내용 중 제일 와 닿는 구절을 하나 써볼까 한다.

"주역은 과학과 합리라는 또 하나의 미신에 집착하는 현대인에게 초합리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만화로 보는 주역 하권, 256p




덧글

  • 함부르거 2018/12/18 03:11 #

    주역은 나이 들어서야 이해가 되는 책이지요. ㅎㅎㅎ 그래도 어릴 때 접하면 나이 들어서 다시 집어들 생각이 나더라구요. ㅎㅎㅎ
  • Hermes 2018/12/18 09:13 #

    맞아요. 저도 어릴때 한번이라도 봤던 책들은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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