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기타는 어려워-초보기타주법교본

아버지와 나는 성향이 비슷하다. 뭔가 하나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스타일. 특히 취미가 하나 생기면 그걸 붙들고 늘어지는 스타일이다. 약간 다르다면 아버지는 여러가지 기웃대기보단 몇가지에 집중해서 끝을 본다는 거고, 난 이것저것 많이 기웃대는 점이랄까.

하여튼 아버지는 취미라고 하기에는 준 전문가 정도로 잘 하시는게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기타연주다. 어머니의 유일한 취미가 노래부르기인데(지금은 환갑이 넘으셔서 힘이 딸려서 잘 안부르신다.) 가끔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하시면 얼른 기타를 메고 나와 반주를 하신다. 그러다 흥이 나면 어머니가 쉬실때 그럴듯하게 솔로연주도 하시고.

지금이야 아버지도 일흔 가까이 되셔서 오래 못 치시지만, 몇해 전만 해도 두세시간 정도는 우습게 치시곤 했다. 명절때 친척들이 모여서 술 한잔씩 하다가 아버지께 기타좀 쳐달라고 하면, 몇번 손사래를 치시다가 멋쩍은 척 '그럼 한번 할까?' 하며 즐거운 얼굴로 기타를 가져와 반주를 넣으시고, 가족들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게 우리집 명절 모습이었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나도 기타를 적당히 칠 줄 알았었다. 사실 기타보다는 노래부르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인데, 집에서 혼자 부르려니 반주가 있는게 좋아서 배웠다. 지금이야 완전히 다 까먹고 손가락에 굳은살도 없어서, 결정적으로 나중에 베이스기타로 바꾸는 바람에 다 잊어버려 통기타는 초보에서 약간 벗어나는 수준이다. 코드도 거의 다 잊어버리고 간신히 몇몇 개만 기억나는 터라 사람들 앞에서 기타 친다는 소리는 잘 안하는 편이다.

어쨌거나 처음 기타를 배울 때 아버지께 어떻게 배워야 하느냐고 물어봤었다. 내심은 아버지가 가르쳐주실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별 말 없이 쓰던 기타와 함께 책을 한 권 내주셨다.


(아는 사람은 안다는 그 교본. 스티커는 동생이 붙여놨다.)


아버지가 본 교본들 중에 초보자에게 제일 좋다는 말과 함께 주신 책. 초보기타주법교본.

워낙 아버지가 말수도 적으시고 집에도 늦게 들어오시는데다 오시면 밥먹고 바로 주무시는 분이라-줄여서 옛날 아버지들-그러려니 하고 말았지만, 내심 좀 서운한 감이 있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아버지는 일하시느라 가끔 집에도 못 들어오실 정도로 바빴으니 내 대신 이 책을 보고 해라는 느낌으로 주셨겠지만, 어린 나에게는 책보고 니가 알아서 하라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이 책을 가지고 꽤나 씨름을 했다. 중1때 받고 1년정도 연습했는데 그럭저럭 노래 부를때 반주 정도는 할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그러다 2학년 말에 친해진 친구가 드럼을 친다고 나보고 베이스를 하라고 꼬드기고, 때마침 교회에서도 베이스 반주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베이스로 바꾸고 나서는 집에 고이 모셔두고 잊어버렸다.

그러다 얼마 전 책을 정리하면서 구석에 있는 책을 발견하고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두고 보고만 있는 중이다. 팔기엔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팔리지도 않을 것 같고,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안팔고 책장 가운데에 꽂아놓은 상태. 기타를 다시 좀 쳐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서 몇번 들춰 보긴 했는데, 손가락이 다 굳어서 제대로 못 칠거 같아서 생각만, 생각만 열심히 하는 중이다.



제목에 기타 주법교본이라고 나와있긴 한데, 주법보다는 기타의 기본에 대해서 잘 설명해놨다. 그림으로 돼 있어서 읽기도 쉬운 편. 내용은 쉬운편이 아니다. 어차피 이런 교본들이 다 반복연습을 중요시하는터라 그냥 보고 겁나게 따라하면 된다. 뒷부분에 이런저런 악보가 나와있는데 이 책이 90년대 책이라 옛날 노래가 많다. 나는 희망사항과 사랑으로, 만남을 꽤 불렀었다. 다른건 잘 몰라서.